□탐방일: 2021.2.6(토)
□탐방지: 충남 공주시 계룡산 (국립공원 인증 8회차, 명산 100 인증 8봉째)
□코스: 동학사 주차장 - 천정탐방센터 - 문골삼거리 - 큰배재 - 남매탑 - 삼불봉 - 자연성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 - 동학사 주차장 (원점회귀 10.4km 5:40분)
◇찾아가는 길: 원주에서 자가용 06:10분 출발, 동학사 소형주차장 08:10분 도착(주차비 4천원, 문화재 입장료 없음. 위 코스를 반대방향으로 들어가면 동학사 입장료 3천원)
계룡산 소개
1968년 우리나라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주 논산 대전의 삼각점 중간에 계룡시가 있고 그 계룡시 바로 위에 있는 산이다
주봉인 천황봉(846.5m)에서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미치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풍수지리적으로도 뛰어나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난리가 쳐들어 왔을 때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십승지 (十勝地)로도 소개되고 있고 조선시대 때 새로운 도읍지로서 신도안을 꼽기도 했었다
등산로 코스는 동쪽의 동학사. 서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에서 각각 오르는 세갈래의 코스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종주길은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10km 안팍으로 6시간 정도 걸린다
계룡산과 정감록
계룡산 하면 정감록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오른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이 씨 오백 년 후에 정 씨가 팔백 년 기업을 이어 갈 신도읍지'로 지금의 공주시 신도안면(新都案面)을 가리키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전쟁이나 천재가 일어나도 절대 안전한 10곳 은신처인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계룡산을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서로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과거에 신도안 사람이 조금이라도 유명해질라 치면 곧바로 정감록을 적용하여 조정의 표적감시가 시작되는 통에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에는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신도안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처음에 도성으로 삼고자 공사 착공까지 했었고
조선 후기에는 정도령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이라는 백성들의 염원이 널리 퍼졌고
지금은 도읍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육.해.공군 3군 본부인 계룡대가 창설되어 국토방위의 가장 중요한 군사기지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계룡산 근방의 세종시에 우리나라 행정수도가 들어왔으니 계룡산이 풍수지리적으로 유의미한 자리이기는 한가보다
▼천동탐방센터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좌측으로 직진하면 동학사로 향하며 사찰관람료 3천 원을 내야 한다

▼오늘 코스는 동학사에서 북서진하여 관음봉을 오른 후 남동진하는 반원형의 원점회귀

▼길에서 보이는 산성인데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아서 계룡산성으로 즉석 명명

내가 계룡산을 다녀간 것이 1991년도였던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어디든 조그마한 바위굴이라도 보이면 음식을 차려놓고 촛불을 켜놓고 꽹꽹꽹 거리는 ㅇㅇ도사들이 우글우글 했었다
▼오늘 길에서 첫 번째 만나는 불법(不法) 기도처


▼계룡산의 등산로는 거의 돌길이나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여기 큰배재부터 장군봉까지 3.6km 구간은 낙뢰다발 지역이므로 벼락맞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의 안내문
우리는 장군봉 반대쪽으로 가니까 조심 안 해도 되겠다

▼천동 들머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전망대 휴식하는 자리

남매탑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연천봉 중턱 청량사가 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청량사지쌍탑으로 불리었으며
5층 석탑은 보물 제1284호, 7층 석탑은 보물 제2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이 탑만 남았으며 이후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오재정(吳再挺)의 계룡산 유람기인 유계룡산록(遊鷄龍山錄)에서 남매탑이 칠층과 구층이고 칠층 석탑은 스님을, 구층 석탑은 전설 속의 여자를 상징한다고 전하고 있으니 이는 탑의 모양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어라? 남자가 7층이고 여자가 9층?
남매탑 전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는 내용이라는데 나는 국민학교를 다녀서인지 기억에 없지만 여하튼 전설은 세월 따라 이어진다
『계룡산 깊은 곳의 암자에서 기도를 하며 머무는 한 스님이 있었는데 하루는 오밤중에 호랑이가 암자를 찾아와 큰 소리로 울며 애원하듯 떠나질 않았다
스님이 호랑이 입안을 살펴보니 짐승의 갈비뼈라고도 하고 누군가의 비녀라고도 하는 이물질이 목에 걸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스님이 호랑이 아가리를 벌리고 손을 쑥 넣어 이물질을 빼내어 주자 호랑이는 연신 머리를 숙여 고마워하며 떠났는데 그 뒤 은혜를 아는 이 호랑이는 스님에게 보은을 하기 위해 전라도에 사는 웬 아리따운 처녀를 함부로 물어다가 암자에 방치하고 사라지는 예비신부 납치사건이 벌어졌으니.. 』
여기까지 보면 은혜 값는 보은의 치악산 꿩처럼 은혜 값는 산중호걸 호랑이의 이야기 같으나 이후 반전이 일어난다
『스님이 그 처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러도 호랑이가 맺어준 이런 귀한 인연을 거역할 할 수 없다 하며 한사코 부부로서 살자고 청하여 스님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님은 불자의 몸으로 어찌 혼인을 할 수 있으리오 하면서 거절하고 대신 오누이의 연을 맺고 같이 암자에서 평생 동안 불도에 정진하다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훗날 세상 사람들이 이들 불도자들의 높은 수행정신에 감복하여 그 자리에 탑을 만들고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에서
'어이쿠 이 눔 호랑아 고맙구나' 하고 못이기는 체 덜커덕 인연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불도자의 의연한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굳게 지켜내야만 하는지의 시험지 앞에서 깊은 난감에 빠졌을 스님의 고뇌도 상상해본다
나라면 어찌했을까나
▼길에서 올려다 보이는 남매탑이 깊은 고뇌 속에 쌓여 있다





▼남매탑 바로 아래에 있는 상원암(上元庵)

▼남매탑에서의 이정표

▼전망대에서의 전망은 안개를 조망하는 것

▼삼불봉 가는 길과 삼불봉을 들르지 않고 관음봉으로 직행하는 길


삼불봉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삼불봉이라 한다는데 도대체 안갯속이라 부처님이 세 분인지 여러 분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조망되는 설경이 계룡8경 중 2경



▼삼불봉에서 서쪽 방향으로 조망되어야 할 봉우리들. 관음봉 연천봉 쌀개봉 천황봉을 구름 속에 그려 넣어 본다

▼삼불봉 우회탐방로를 만나는 지점

계룡산 자연성능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2km 구간은 길 옆으로 절벽이 성벽처럼 늘어서 있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성이라고 자연성능(自然城稜)이라 부르며 길이 매우 험하여 특히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경관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찐한 곰탕국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자연성능 밖은 고요한 바다이며 눈에 보이는 것은 한 떨기 수묵화이다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이 길은 진짜 매우 험한 길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본 자연성능의 위험한 길

▼관음봉 정상에서 인증

▼정상석을 뒤에서 보면 글씨가 한자로 씌여 있고 아래로는 정자각이 보인다

▼관음봉에서 동쪽 방향으로 조망되어야 할 삼불봉 장군봉 황적봉 쌀개봉의 장관들도 상상으로 그려보고


▼관음봉에서 하산하는 새로 만든 편안한 길

▼관음봉에서 하산하는 예전의 험난한 길

▼은선폭포 직전 평탄지에서 만나는 괴목


은선폭포(隱仙瀑布)
신선들이 짱 박혀 숨어서 놀았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은선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폭포의 물줄기가 낙차되며 피어나는 운무가 계룡8경 중 7경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산의 정상부에 위치하여 폭포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의 수량이 없기 때문에 갈수기에는 낙수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7경의 운무는 안내판의 사진으로 감상

▼겨울에 보는 은선폭포는 폭포라기 보다는 가파른 바위 절벽의 모습


▼어데가 쌀개봉인지..


▼풍부한 수량과 청량한 새소리가 아름다워서 계룡5경으로 당첨된 동학계곡의 겨울 모습

▼동학사가 보인다

▼동학사 담벼락을 뚫고 솟아나온 느티나무

▼느티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여러 겹의 기둥으로 받쳐 놓은 갸륵한 손길들의 흔적


▼동학사 내부 모습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20호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불상은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약사불 아미타불을 배치하는 삼세불상 형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적 삼불좌상은 임진왜란 이후 크게 유행한 형식으로 이 불상도 그러한 에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 삼불좌상에서는 불상의 조성 및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문서와 수백 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는 동학사 대웅전


계룡산의 국보들
계룡산에는 국보 제298호 갑사 삼신불괘불탱과 국보 제299호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이 있는데
오늘은 갑사와 신원사를 지나지 않고 동학사만 들렀기에 국보를 만나지 못했다
참고: 괘불탱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법당 앞 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던 커다란 그림
▼인터넷으로 검색한 국보 계룡산 국보


▼동학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포장도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가 1979~1981년이니까 국어교과서에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기억이 나질 않는가

▼동학사 일주문

계룡 8경
1경. 천황봉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2경. 삼불봉을 하얗게 덮어버린 설경
3경. 연천봉의 해넘이
4경. 관음봉을 싸안고 한가롭게 떠도는 구름
5경. 한여름 동학사 계곡의 숲
6경. 가을 갑사 계곡을 온통 붉은색으로 수놓은 듯한 단풍
7경. 은선폭포가 낙수되면서 하얗게 포말을 일구워 내는 물안개
8경. 남매탑에 반쯤 걸린 달의 모습
두터운 안개 속이지만 8경 중 오늘 2,4,5,7,8경 다섯 개를 보고 왔으니 대박이다

▼놀랍게도 계룡산 국립공원 거의 대부분이 동학사 갑사 신원사의 사찰사유지

▼하산 후 옅어진 안개 뒤로 보이는 계룡산. 조금만 더 일찍 걷혔더라면 을마나 좋았을라나


▼오늘 지나 온 궤적

아침에 호남선 고속도로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룡산의 풍광에 가슴 설렜던 기대감을 단박에 거둬들여야만 했던 각별한 산행이었지만
눈 앞에 산도 그려보고 바다도 그릴 수 있었던 상상 속의 여행이 된 오늘
아쉬운 기억도 미련도 닭 벼슬 뒤로 모두 밀어 놓고 감상문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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