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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앤산

강화 고려산 진달래의 향연

by 가을하늘흰구름 2024. 4. 13.

*날짜: 2024.4.13(토)
*탐방지: 강화도 고려산
*코스: 국화2리 마을회관 옆 주차장 - 청련사 - 고려산 - 백련사 - 강화 고인돌 유적지 주차장 (8.7km 3:13분)
 
진달래 명소로 이름난 강화 고려산을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진달래로 대표되는 산은 고려산 외에 대구 비슬산, 창원 천주산이 있다
 
고려산(高麗山) 오련지(五蓮池)
강화도에 있는 해발 376.5m의 산
고구려 장수왕 4년 천축조사가 이곳 고려산에 연못에 피어있는 5가지 색상의 연꽃을 날려 꽃이 떨어진 장소에 절을 세우고 연꽃의 색상을 따서 백련사 흑련사 황련사 청련사 적석사라 칭했다
이 연못을 오련지라 하고 그 산을 오련산, 그 절들을 묶어 오련사라고 불렀다
이후 고려 때 몽고군의 침입으로 개성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겨 38년간 수도를 삼은 일로 오련산을 고려산으로 개명하였다
 
천축조사는 천축국의 스님이니 그럼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삼장법사가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동행하고 불경을 구하러 가던 곳이 천축국이었으니까
 
고려산 산행은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백련사에 인파가 대거 몰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청련사를 들머리로 선택한다

 


어서오시겨~
진달래 꽃향기 가득한 마을 국화리 (10:25)

 
마을길을 따라 청련사로 향한다

 
마을길 옆의 저 소나무는 '큰나무'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10:34) 

 
청련사 
푸른색 연꽃이 떨어진 자리
청련사에는 웬만하면 다 보호수이다
보호수가 10m 간격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10:42) 

 

 
고려산 방향으로 (10:45) 

 
엄청나게 큰 진달래 걸개 사진을 배경으로 한 컷 (11:30) 

 
사람들 많~다

 
꽃 산행은 개화 날짜 맞추기가 복권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오늘 우리는 고려산 복권에 당첨되었다 (11:40) 

 
진달래와 사람들 

 
고려산과 연개소문의 전설
고서 강지도에 연개소문은 고려산 북쪽의 시루마산에서 태어났고
시루봉 중턱에 연개소문이 살던 집터가 있었고
연개소문이 말을 타고 무예를 연마했다는 차마대,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오련정 등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 마을에 설치된 연개소문 사적비 (인터넷에서 다운)


고려산 오정 (12:30) 

 
오련지  
다섯 가지 색상의 연꽃을 날린 연못

 
백련사
흰색 연꽃이 떨어진 자리 (12:45) 

 
보호수스러워보이는 느티나무 

 
고려산 안내도 (13:20) 

 
전등사 앞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전등사 탐방 
 
전등사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의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 아도화상이라는 승려가 창건
정화궁주가 옥으로 만든 법등을 기증하면서 이름을 전등사(傳燈寺)로 바꾸었다
정화궁주는 본래 충렬왕의 왕비였으나 원나라의 제국대장공주에게 왕비 자리를 내주고 제국대장공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비운의 여인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교전하였던 장소
보물 178호 대웅전에는 추녀 네 귀퉁이의 나부상(裸婦像)이 유명하다
[출처: 위키백과]
 
전등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가
인천시 역사자료관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년)에 세워진 초문사와 아불란사로 전해진다
하지만 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증수기문에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라고 하고 있다
[출처: 서울경제신문 2024.5.11 기사]
 
삼랑성 (15:38)

 
전등사 철종
중국 송나라에서 무쇠로 만든 종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가져가려다가 패망하면서 인천에 놓고 간 것을 광복 후에 이곳에 옮겨놓았다
보물 393호

 
대웅전 나부상(裸婦像)에 전해지는 이야기
나부상은 대웅보전 추녀 네 귀퉁이에 조각된 나체 여인상이다
대웅보전 건축에 참여했던 목수가 마을의 주모와 사랑에 빠져 모은 돈을 모두 맡겼는데
어느날 주모가 돈을 들고 튀어버렸다
상심하고 있던 목수는 주모를 저주하기 위해 대웅전 처마에 주모의 여인상을 조각하고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도록 했다는 설과
제국대장공주에게 박해를 받던 정화궁주가 복수하기 위해 목수에게 제국대장공주를 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설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여인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네 귀퉁이의 나부상 (16:00) 

 

 

전등사를 나오면서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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